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봤을 때의 감정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지만, 인물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과 상징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숨겨진 의미들이 생각보다 더 깊고 넓다. 이 글에서는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고 느낀 감정과 인물의 이해, 그리고 영화 속에 숨어있는 시각적·서사적 상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처음과 다른 두 번째 감상 (이해)
‘헤어질 결심’을 처음 봤을 때는 긴장감 넘치는 추리물의 외형에 집중하게 된다. 누가 범인인지, 송서래는 어떤 사람인지, 형사 장해준은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시선이 집중된다. 하지만 두 번째 관람에서는 그 모든 질문들이 잠시 뒤로 밀리고, 인물의 심리와 감정선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해준의 불면증과 감정의 교차, 송서래의 고요하지만 무서운 욕망은 한 장면 한 장면에 감정의 물결처럼 스며든다. 단순히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단순히 죄책감이라고 보기엔 너무 애틋한 그 복잡한 감정들이 다시 보게 만든다.
처음엔 해준이 송서래에게 빠진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지만, 두 번째 관람에서는 그의 불안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얼마나 큰 공허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송서래는 그 틈을 파고든,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인물들의 얇고 섬세한 감정선 (감정선)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대사가 아닌 눈빛과 침묵으로 표현되는 감정들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들이 유독 많다. 특히 송서래가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 전체의 감정선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결국 닿을 수 없고, 닿아서는 안 되는 관계임을 알기에 선택한 거리감. 그 거리 속에서 가장 치열한 감정들이 들끓는다. 박찬욱 감독은 이 감정의 간극을 차갑고도 아름다운 영상미로 표현해낸다.
눈으로 보는 것은 차가운데, 그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은 뜨겁다. 관객은 그 대비 속에서 더 큰 몰입을 하게 된다. 송서래는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숨기는 것을 택한다. 사랑은 결국 상대방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어쩌면 매우 비극적이지만 순수한 결말이었다.
영화 속 시각적 상징들 (상징)
‘헤어질 결심’에는 수많은 시각적 상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산과 바다라는 자연물은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해준은 산처럼 똑바르고 논리적인 인물이고, 송서래는 바다처럼 흐르고 숨는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 마주치는 장소도 ‘산’이고, 마지막은 ‘바다’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스마트폰, 번역기, 녹음기 같은 ‘기록 장치’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감정과 진심이 직접 전달되지 않고, 항상 매개체를 통해 전달된다. 이는 인물들 간의 거리감을 상징하는 동시에, 진실이 왜곡되거나 오해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색감 또한 상징의 큰 축이다. 송서래가 입는 옷은 점점 짙어지고, 해준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진다. 이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들의 감정이 어두운 곳으로 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박찬욱 감독은 이처럼 ‘보여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하나의 장면조차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본 후,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도 아니고, 단순한 스릴러도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감정의 밀도와 서사적 상징, 영상미가 어우러진 예술 작품에 가깝다. 처음 봤을 때보다 두 번째 감상이 훨씬 더 진하고 묵직했다. 당신도 혹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처음엔 보지 못했던 많은 감정과 의미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